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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살던 고향, 홍대 앞

에세이
1
나에 살던 고향, 홍대 앞

1.

나에 살던 고향은 그리운 홍대 앞, 서교동이다. 상수동에서 태어나 서교동에서 자라며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다니고 결혼도 했다. 7번 버스, 361번 버스, 2번 버스가 다녔던 그 길은 나의 자전거길이자 산책길이었고, 더 이상 기차가 다니지 않는 철길은 내 동생과 동네 꼬마들의 놀이터였다. 가족끼리 산보를 나서는 날엔 ‘홍익 서점’에 들러 책을 사고, ‘서림 제과’에 들러 빵도 먹고, ‘미화당 레코드’에 들려 LP를 샀다. 이렇게 ‘청기와 주유소’ 앞까지 한 바퀴 크게 돌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골목골목은 한 집 건너 친구들 집이었다.

2.

그러나 어느새 홍대 앞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카페가 들 어섰다. 이젠 명동이나 신촌까지 나가지 않아도 집 앞 레스토랑 ‘우리 마당’에서 내가 좋아하는 함박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었다. 그네 의자로 유명했던 ‘흙과 두 남자’ 카페는 우리 동네의 명물 이었고, 대학생이 되어 친구들과 자주 갔던 ‘홍콩’ 중국집, ‘비어 인’ 카페, ‘카이저 호프’ 그리고 ‘홍대 앞 놀이터’까지 모든 곳이 추억이 쌓여있었다. 홍대 앞은 내 삶의 모든 순간을 품었던 고향 이었고, 그곳의 골목과 풍경, 그리고 함께한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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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리고 역시 홍대앞이 고향인 남편과 함께 동네 한 바퀴를 돌며 데이트를 했다. 하지만 결혼 후 그곳을 떠난 뒤, 홍대 앞엔 더 이 상 우리를 위한 공간은 없었다.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던 서교호 텔 뒤 ‘대양정’ 고깃집 사장님, 딸을 데리고 갔을 때도 변함없이 인심 좋게 맞아주셨던 서교시장 골목 안 ‘족발집’ 할머니도 이제 는 추억 속에 남았다. 서교시장 골목길도 완전히 사라지고, 그 옛 날 철길은 가장 핫 한 클럽의 메카가 되었으며, 한적한 산책길은 골목마다 들어선 카페와 맛집들 사이로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

4.

그렇게 친정도, 시댁도, 친구들도 모두 떠났다. 함께 했던 친구 들, 정든 골목길, 추억의 장소들은 사라졌지만 내게 홍대 앞은 여전히 그리운 고향이다. 이젠 추억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고, 더 이상 홍대 앞 번화가에서 친구들을 만나지 않지만 우린 여전히 보이는 것 대신 보이지 않는 것을 이야기하고 느끼며 나에 살던 고향 홍대 앞을 추억한다. 홍대 앞이 좋지만, 난 이제 홍대 앞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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